에피소드 한국사: 근현대 편

저자
표학렬 지음
출판사
앨피 | 2012-08-2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현직 교사가 사건과 사람 이야기로 엮은 재미있는 근현대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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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에 대한 챕터는 충격적이었다. 



그야말로 이완용은 시대의 엄친아였다고 한다. 


수려한 외모에 학식이 매우 뛰어나고 성품도 온화한데다, 


개인적으로는 자애로운 아버지에 효자였고,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대표하는 서예가 중 한명으로 꼽힐만큼 대단한 명필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갖출 수 있는 건 다 갖춘 시대의 엄친아였던 것이다. 



이완용은 만24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세자를 가르치는 일을 맞는 등 승승장구 했다고 한다. 


잘나가는 이완용은 딱히 나라를 팔아먹을, 반역과 매국을 할만한 특별한 동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를 을사오적, 매국의 대명사로 꼽히게 한것인가?



이완용은 일찍이 원래는 친미였으며, 중간에 아관파천 당시에는 친러 입장을 취한다. 


아관파천 당시에 고종은 친일 인사들을 대거 처형하는데, 우리에게 친일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완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친러인사로 매우 높은 신임을 받는 신하였다.


그러다 친미와 친러의 줄을 번갈아가며 타다 두 나라 모두에게서 배척당하고, 러일전쟁 무렵 부터는 친일로 입장을 바꾼다. 



이렇게 계속 갈아탄 것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완용은 그저 자신의 평안와 실리를 챙기려는 목적이 의사의 기준이었음을.


이를 더 잘 말해주는 사례를 책은 더 소개하고 있다.



창덕궁에서 15년간 순종 황제의 측근으로 일한 일본 관리 곤도 시로스케가 쓴 <대한제국 황실비사>를 보면, 당대 일본인들은 이완용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완용은 철두철미하게 권력을 다루는 정치가일 뿐 정치적 절개를 지키는 사람은 아니다."


곤도는 이어 이완용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 주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였다. 일본이 순종을 본토로 불러들여 천황을 알현시킴으로써 조선과 일본 왕실의 주종 관계를 확실히 못 박으려고 노력할 때의 일이다. 순종이 일본에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자, 일본 총독이 이완용을 불러 이 일을 맡겼다. 이완용은 먼저 고종을 찾아가 순종의 일본 방문을 여쭈었다가, 고종이 화를 내며 꾸짖자 바로 포기해 버렸다. 그러자 대신 순종의 외척인 윤덕영이 나서서 고종에게 갖은 수모와 협박을 가해 강제로 허락을 받아 냈다. 이처럼 이완용은 절대 무리하지 않고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약 친일파로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면, 윤덕영이 했던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결코 이완용을 옹호하고자 이것을 쓰지 않았다. 



'역사에서는 나쁜 사람보다 어리석은 인간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평탄한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이 대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은 처세일 뿐이지만, 험한 세상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대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완용이야말로 그 표본이 아니겠는가? 


이는 현대 작금의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국이 어려울수록, 능력있는 사람이 개인의 실리만을 취해 산다는 것은 그 위험성이 배가 된다.


지식인은 지식인의 소임을 다해야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세상에서 혼자만의 성취는 있을 수 없다.


물론 노력의 여하는 혼자만의 것이라 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에서 


주위의 모든 사람과 환경을 소거한다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다 못해, 내가 책을 읽고 무언가 느끼는 것을 예로 들어보면, 


내가 책에 익숙한 환경, 이것은 내가 그렇게 태어나서이다. 


분명히 유리한 환경을 얻은 것만큼 불리한 환경을 얻은 사람도 있다.


내가 조금 더 여유로운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에대한 책임의식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조건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야해. 가 아니라, 적어도 그들의 존재를 생각해야한다는 것.


그런 것을 간과했을 때, 이완용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완용에겐 자신만의 실리와 자신만의 평안을 위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에겐 '나'를 구성하는 것엔 내가 아닌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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